노파는 밭둑에 서서 멀거니 자신의 밭을 내려다 본다.
밭을 에두르고 있는 굴참나무 숲사이로 높다랗게 솟은 철탑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게 잘된 일이야 잘못된 일이야."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흔든다.
그녀 나이 오십도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술이 화근이었다. 눈만뜨면 남편은 술에 매달려 살았다. 그일이 있은 뒤 부터였다.
어느날 면에서 정관수술을 무료로 해준다는 말에 덜컥 수술을 받고난 뒤부터였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건지 수술받은뒤로는 노상 마누라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수술이 잘못된 모양이야. 그러게 저렇게 마누라 뒤만 졸졸 따라다니지."
"그러게 말이야 마누라를 꼼짝도 못하게 하는것이 아무래도 뭐가 잘못되긴 잘못된 모양이니 그러니 저렇게 마누라 감시를 하지."
술에 매달려 살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병나발을 불었다. 밥은 거들떠도 안보고 삼시세끼를 술로 채웠다. 결국 자리보전 하고 말았는데 누어서도 술만 찾았다. 자리에 누운지 두달째 되던 어느날 아내의 소매자락을 붙들고 사정사정했다.
"한병만 응 꼭 한병만 마시고 다신 안 마실게 응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여보 딱 한병만 응 ? 여보오 응?"
성화를 견디다 못한 아내가 될데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사다준 술이 결국 목숨을 재촉하고 말았다 그예 잃이 터지고 만 것이다. 술에 절은 창자가 나달나달 해져서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남편이 떠났다.
장사 치룬지 서너달달쯤 지나서였다. 이웃들이 말했다.
큰아들 몫과 작은아들의 몫을 나누고 고개 너머 천여 평 땅을 자신 앞으로 명의 변경을 해 놓으라고 했다.
-늙어서라도 내 앞으로 된 땅이라도 있어야 자식들이 괄시 못해.
-암 그렇고말고….
그렇게해서 자신의 앞으로 등기를 한 땅이 천여평이나 되었다.
밭머리에 철탑을 세워야 한다며 범강장달같은 사내 둘이 찾아온 것은 남편 떠닌지 이십년쯤 지나서였다. 밭 위로 지나가는 전선에 대한 보상이라며 천만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내밀었다. 가뜩이나 돈에 말라있던 터라 이게 웬 횡재야 하며 냉큼 도장을 찍어줬다.
-어머니 이앙기 사는데 좀 도와 주세요.
-경운기가 오래돼서 새로 사야 될 것 같아요.
그 돈은 알게 모르게 큰아들 주머니로 굴러들어 갔다.
딸들도 기대를 한 모양이었지만 출가외인 운운하는 큰며느리 눈치가 보여 입도 벙끗못했다.
농삿일 밖에 모르는 아들은 땅만 보고 사는 천상 농부다. 돈 한푼 들어올 데 없었지만 다행히 며느리가 인근 식당에 나가 벌어오는 백만 원 남짓한 돈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렸다. 그 탓에 며느리한테 얹혀 살고있다는 무력감이 노파를 지배했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손자녀석 때문이었다. 수원 어디선가 무슨 식품을 취급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손자가 날마다 전화로 제 아비를 졸라댔다.
-아부지요. 논을 팔던지 아니면 집이라도 잽혀서 한 오천만 원만 맹그러 주시이소
도지로 주고 있던 집터의 주인이 집이 깔고 앉아있는 땅을 사던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팔겠다고 압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를 하루 아침에 버리고 떠날수도 없는 일이라 결국 저수지 앞의 땅을 팔아 충당했는데, 이번엔 손자의 성화가 시작된 것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손자녀석이 장가를 가야겠으니 전세금이라도 보태 달라고 생짜를 놓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남은 땅이라야 구불구불 길게 벋어 모양새도 좋지않은 닷마지기 논이 전부였다.재촉되는 손자의 성화에 아들과 며느리가 슬금 슬금 노파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대놓고 말은 못해도 노파의 명의로된 밭이라도 팔아 돈마련을 좀 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아들내외의 눈총을 견디다 못한 노파는 슬그머니 부동산을 찾아갔다.
-저기 귓밭 고개 넘어가는 우리 밭 그게 얼마나 가는지 좀 알아봐 줘요.
부동산 업자가 컴퓨터에 밭주소를 찍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거. 팔기 힘들겠는데요요. 요즘 누가 철탑 지나가는 땅을 사요. 아마 팔기 힘들겁니다.
_철탑이 왜요? 철탑이 사람 잡아먹는 답디까?
-이 할머니 암것도 모르시네. 암튼 철탑있는 땅은 팔기 힘들어요.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했다 .
'성님 그거라도 붙들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괄시 안받아.'
옆구리 쿡 찔러 가며 조언하던 재숙 할매의 얼굴이 오락가락 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부동산 업자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저기요. 저기 그 땅 정말 팔 거에요? 평당 얼마씩 받을 건데요.
-글쎄요...
불안이 엄습했다. 반반이었다.정말 팔리면 어쩌지? 하는 마음반 팔아야 된다는 마음반. 재숙할매의 얼굴이 오락가락한다. 저 만치서 지켜보는 며느리.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운을 떼어 보았다.
-글쎄... 얼마면... 되겠우?
-평당,... 십만 원 정도면?.....
기가 막혔다. 그 번듯한 땅이 겨우 평당 십만 원이라니.
-에이 두말도 하지 마쇼. 요 앞 저수 곁의 밭도 얼마 전에 삼십 만 원씩 받고 팔았다 하데요. 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십만 원이면 너무 한 거 아니요.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땅 철탑 때문에 아무도 안 사요. 그냥 헐값에라도 파는 게 좋을 겁니다.
업저가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다. 손자는 여전히 전화통에 불이나도록 전화를 해댔다. 고민이 깊어가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노파는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
-저 접때 말한 그 가격에 조금만, 한 오만 원이라도 더 부쳐줘봐요. 그럼 넘길테니까.
중개인이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아이구 그 일은 벌써 물건너 갔어요. 그 사람 다른데다가 샀어요. 다른데다가 샀다는 중개인 말에 이상하게도 속이 후련했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죽을때 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다잖아.'
처음 복덕방을 찾아갔다 돌아오던날, 마을 회관에서 들은 소식은 청천벅력이었다. 허리가 잔득 굽은 영복이 할매가 손을 잡아당기며 꺼이 꺼이 울었다.
-어째 이런일이 다 있데..어어엉
-왜 왜 왜그러는데 무슨 일 있어?
-아 글쎄 순지 할매가 자살을 했데
-건또 무슨 소리야 순지 할매가 왜 자살을 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대
-ㅉㅉㅉ 아이구,,,, 그러게 뭐하러 아들네로 들어가 ....
순지 할매가 있던 전답을 다 팔아치우고 서울사는 아들네로 들어간 것이 삼 년전이었다 .
-어머니 여기 있는거 다 팔아치우고 저랑 삽시다 제가 잘 모실게요
-그래요 어머니 성심을 다해서 잘 모실게요
아들 며느리가 눈웃음 살살 치며 순지할매를 꼬드겼다 .
그렇게 몇년을 졸라대자 순지할매의 마음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때가 되면 자식신세를 지는 게 당연 한건데.'.
이웃들이 말렸지만 결국 순지 할매는 아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순지할매가 땅팔아 집팔아 아들 아파트 사는데 보태고 수중에 삼천만원을 꿍쳐두었었다고 했다.
-아프면 자식한테 손벌리기도 그렇찮아. 그리고 며느리가 얼마나 잘 하는지몰라 . 아들보다 외려 며느리가 잘 한다니까'
이따금 들려오는 순지할매소식이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 모두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들네와 합친지 불과 삼년도 안돼 순지할매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영복할매가 마른 기침을 쏟아냈다.
- 컥컥 커억... 그글쎄 수순지할매가 삼천만원인가를 꿍쳐두고있었다잖아. 커억
-그랬댔지. 그렇게 들었어
-그런데 고 여우같은 며느리가 그 돈 다 알겨낼때까지는 혀에 꿀처럼 굴었던 모양이야.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데. 그게 다 그돈 알겨낼려고 수작을 부렸던거지. 커억!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 돈 다 알겨먹고나서부터는 밖에도 나가지 마라 친구도 만나지 마라, 나가서 뭔 흉을 볼려고 하느냐, 막 이러면서 꼼짝도 못하게 하더라는거야. 죽기 석달전인가? 하루는 아파트 경노당 친구 두명이 하두 이 노인네가 안나오니까 궁금 해서 찾아갔던 모양이야 그런데 며느리가 문도 안 열어주더라는거야. 그래서 그냥 돌아왔데. 그날 순지할매가 며느리와 대판 싸운 모양이야. 며느리 고함 소리가 이웃까지 들렸다니 오죽 했겠어. 글쎄 그 젊은 년이 지 시어머니를 확 밀치는바람에 다리뼈를 다친모양인데 병원에도 안 데리고 갔다는 구만. 석달을 방안에서 끙끙 대다가 결국 창문으로 뛰어내린거지.
-그런 벼락을 맞아 죽을 년
-더 나쁜 건 그 아들새끼야. 지 어미 그 지경 되도록 뭐했냐구. 지 처 말만 듣고 하나뿐인 지 엄마를 방치한 천하의 못된 놈!
복덩방을 나와 터덜 터덜 집으로 향하는데 아들이 탄 자전거가 마즌편에서 달려온다
-어머니 복덩방에 갔었다면서요?
-아니 그건 어떻게 알았냐?
-재순이 아빠가 봤데요. 어머니가 복덩방에 들어가는 걸.
-그래서 뭐?
-아니 뭐 그렇다는 말이지요.
기대를 하는 아들의 눈치에 노파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 철탑 있는 땅을 누가 사겠냐.
-........
높새바람이라도 부는 걸까. 밭 머리 위에서 철탑이 우웅거린다.
-그려 어쩌면 저게 내 보험인지도 몰러....
끝